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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청자

 

그랜드 피날레 스포일러 포함

 

 

거꾸로 매달린 행성

 

 

     늘 누워있네요.

     주은성이 뱉은 말이었다. 유영하듯 위성들의 궤도에 몸을 맡긴 채였다. 공허하게 뜨인 눈 너머로 기울어진 행성의 모습이 들었다. 그 무심한 시선조차도 전부 포착되어 영상이 된다. 화소의 형태로 27억의 거리를 넘어 전달된다. 그리고 인류의 희망이란 이름 아래 칭송받는다. 귓전에 부착된 스피커 너머로는 늘 그런 북돋음이 전해져왔다. 지구의 모두가 너를 주목하고 있어, 주은성. 연구원들은 주은성의 성취가 인류 과학에 얼마나 지대한 공헌을 할지 속살거려주었지만, 어쩐지 오늘따라 전부 무감했다. 발을 낚아채는 묵직한 압력이 그저 아득하기만 했다. 중력. 그것이 내게 허가된 힘이던가? 느낀 적은 있던가. 언제였던가. 기계로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영역을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꼭 망각이라도 한 것만 같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말이지. 어쩌면 이 또한 근래 겪은 손상의 일환일지도 모른다. 주은성이 눈을 깜빡거리자, 이내준이 슬쩍 그의 눈치를 살폈다. 그저 기기의 일환일 눈동자 위로 어떠한 염려 따위가 스쳐 지나갔다.

     얼마 전 눈먼 소행성 하나가 주은성의 기체에 직격을 했던 것은 이내준도, 연구원들도, 나아가 인류까지 기겁하게 만든 극심한 비상사태였다. 지구의 언론은 주은성의 회복 가능성을 점치기에 바빴고 항공 우주국은 계속해서 이내준을 향해 주은성을 치료하라는 명령만을 반복했다. 이내준은 제 본분에 충실했다. 그는 정말 부단히도 노력하여 마침내 주은성을 고쳐냈다. 예의 탐사와 연구 활동을 전부 해낼 수 있도록. 그러나 한 가지만은 통제하지 못했다. 다름 아닌, 예측하지 못한 에러 코드의 침투였다. 분명한 오류 코드였으나 이내준의 능력으로는 해독과 해제가 불가능했고, 그 위력이 약하기만을 기도하며 주은성과의 탐사를 재개하기 시작했더랬다. 다행히 주은성의 기본적인 설비에는 문제 되는 것들이 없었다. 문제가 생겼다면….

     “왜 누워있는 걸까요?”

     이런 뜻 모를 소리를 반복한다는 점일까.

     내준은 은성의 낯을 바라본다. 인류의 모든 기술의 결정체라는 그 얼굴은 더없이 멀끔했고, 과거 충돌을 겪은 안드로이드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말짱했다. 하나 저 눈이 언제부턴가 기계적인 임무 처리의 욕구만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이내준은 알고 있다.

     이것은 지독한 에러다. 이내준은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은성 씨 데이터에 없어요?”

     “있긴 한데, 뭐랄까. 그냥 물어보고 싶었어요.”

     그럴 수도 있는 거잖아요. 안드로이드로서 ‘그럴 수 없을’ 소리를 하며 주은성이 다시금 멍하니 천왕성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얼음 거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청록색의 행성은 오늘도 안정된 대기를 태에 두른 채로 느릿느릿 자전하고 있었다.

     “…학계에서 가장 유력한 이론은, 본래 자전축의 기울임 없이 꼿꼿하게 서 있거나, 그와 유사하게 있던 천왕성이 거대한 행성에 충돌하여 이런 식으로 누워버렸다는 거예요.”

     “97.77도의 각도로요?”

     “……그렇죠. 아시네요.”

     정확한 각도였다. 그것은 주은성에게 내장된 부품에도 그러한 지식이 저장되어 있다는 소리와도 같았다. 왜 쓸데없는 짓을 하지. 이내준은 그런 의문을 품으면서도 구태여 내뱉지는 않았다. 코드의 일환이라고 생각하면 주은성이 더 답답할지도 모른다.

     주은성은 이내준의 친절한 설명에도, 은근히 뼈가 있는 대꾸에도 무던한 얼굴만을 유지했다. 그저 흠,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궤도를 따라 돌며 천왕성을 내다볼 뿐이었다.

     주은성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뭐랄까. 매달려있는 것 같기도 해요.”

     “네?”

     “엄청나게 밀쳤으면 그대로 나가떨어질 만도 한데. 보세요. 태양을 도는 궤도에 악착같이 붙어 있어요.”

듣고 보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 만도 했다. 특히 천왕성을 감싼 고리들이 궤도에 매달려 모빌처럼 움직인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좋은 모습이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할 수 있는 발상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말이다.

     특수한 안드로이드가 보통의 사람을 닮아간다는 것은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자신도 천왕성에 온몸을 바친 안드로이드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그 정도는 알았다.

     마치 인간 어린아이처럼 천왕성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주은성의 옆얼굴만 바라보던 이내준은 조용히 다짐한다.

     “대롱대롱…….”

     아무래도 이 빌어먹을 에러를 어서 없애야겠다고.

 

     “주은성 프로젝트의 끝을 기억하세요?”

     하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에러의 피해자는 허구한 날 이런 시답잖은 소리만 늘어놓았다. 이따금 신체 정비를 핑계 삼아 주은성의 몸 전체를 훑을 때도 있었지만, 이렇다 할 수확은 없었다. 주은성은 겉보기에는 멀쩡했다. 탐사나 조사에 있어서도 멀쩡했다.

     “…뭐였는데요?”

     오로지 이내준 앞에서만 기이했다.

     느리게 되묻자 주은성이 돌연 눈동자를 데굴 굴렸다. 그 궤적을 따라잡던 이내준 눈동자의 내장 카메라가 갑자기 작은 경보음을 울렸다. 자동 응답처럼 입이 움직였다. CPU 과열 확인.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경고에 이내준이 주은성에게로 빠르게 시선을 돌린다. 그러자 경보음이 곳곳에서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CPU를 제외한 다른 부품에서도 과열이 확인되었다는 알림들이었다.

     뭔지는 몰라도 어딘가 단단히 잘못된 것처럼은 보였다. 이내준은 겉모습만 보고 쉽게 탐사를 결정한 자신을 책망한다.

     “역시 점검받아야 하겠어요. 다 치료된 줄 알았더니…”

     이내준은 서둘러 주은성의 팔목을 낚아챘다. 그러자 경보음의 세기가 더욱 커지며 주은성의 신체에 부착된 쿨러 따위가 가동하는 소리가 윙윙 들려오기 시작했다. 내준은 당황하여 얼굴을 찌푸렸다. 정말 왜 이래? 그로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하지만 은성은 여전히 뜻 모를 낯을 하고 있었다. 안절부절못하는 사람 같기도 하고. (안드로이드가? 말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든 이내준을 따라나서고 싶어 하는 사람 같기도 하고. 여하튼 복잡하고 알기 어려웠다.

     어쨌거나 주은성은 이내준에게 순응했다. 얌전히 정지한 채로 추가 검사를 받기 시작했다. 그를 구성하는 각종 부품이 전부 과열 상태였다. 이내준의 마음은 공연히 조급해졌다. 왜 이렇게 뜨겁지. 무심코 뱉은 말임에도, 주은성은 그를 기막히게 낚아채어 딴소릴 했다.

     “그랜드 피날레라는 가제로 잡혀 있대요.”

     “네?”

     “주은성 프로젝트요. 물론 아직 한참 남았지만….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이상…. 저는 천왕성 대기 외기권에 몸을 던져 불타야 하거든요. 아, 어쩌면 내준 씨도요.”

     내준의 두뇌가 느리게 굴러갔다. 낡은 계산 시스템은 이럴 때 종종 말썽이었다. 삼십여 초 정도 고민하던 내준이 작은 탄식을 뱉는다. 아.

     “천왕성의 대기 외기권은 높게는 섭씨 526도까지 올라가죠.”

     “맞아요. 참 신기하죠? 천왕성은 태양계에서 가장 차가운 행성으로 유명하잖아요.”

     내준의 두뇌가 다시금, 느릿느릿 굴러갔다. 그렇다. 지구에서부터 27억 킬로미터가량 떨어진 이 행성은 지구의 4배 정도 되는 크기를 가지고 있지만, 태양광은 지구의 1%조차 받지 못하여 언제나 암흑이었다. 암석과 얼음, 황화수소와 메탄 구름 따위로 뒤덮인 이 행성은 자신보다 태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해왕성보다도 낮은 온도를 자랑한다. 해왕성은 출처 불명의 힘으로 스스로 열을 내지만, 천왕성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오롯이 태양에만 의존하며 추위를 견뎌내는 것이다. 어떠한 발열도 없이. 얼음 거인이라는 별칭은 이러한 특성에서 유래했다.

     어찌 보면 한낱 고철인 이내준과, 한낱 고철인 주은성과 닮았다. 우리는 스스로 무언가를 해내지 못하지. 그저 오롯이 견뎌낼 뿐이지. 명령과 찬사와 임무와 운명, 혹은 그러한 것과 닮은 무수한 무언가들에 의존하여.

     “가장 시린 행성에서 가장 뜨겁게 죽다니.”

     의존하지 않을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의존하지 않게 만들어줄 수 있다면?

     그런 의문이 들어버린 건, 내준의 게으른 사고회로 때문일지도 몰랐다. 제대로 된 계산과 사고 판단을 하지 않고 무턱대고 물음표를 내놓는 일종의 오류일지도 몰랐다.

     “어쩐지 기분이 이상해요….”

     주은성이 중얼거렸다. 기실 그건 이내준도 그랬다. 그저 당연한 절차를 이야기하고 있을 뿐인데, 주은성이 하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끝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이내준은 자신의 닳아빠진 메모리를 힘껏 가동했다. 저장된 메모리 중 제일 오래된 것을 재생한다.

     시작을 떠올렸다. 가장 처음을….

 

     미지를 향한 인류의 욕망은 끝을 모르고 타올랐다. 지구에 발붙이고 사는 이들은 모두 그 너머를 꿈꿨다. 아침을 훤히 밝혀주는 태양과 밤을 훤히 밝혀주는 달, 이따금 눈에 보이는 수성과 금성, 목성과 토성, 그리고 그보다 멀리 있는 수많은 별, 그래, 항성들.

     맨눈으로라도 도달하고 싶다며 눈을 단단히 치켜뜨고 밤하늘을 쳐다보던 이들은 기어이 망원경을 발견해냈고, 육안으로는 볼 수 없었던 최초의 행성을 목도한다.

     천왕성.

     지구처럼 푸르게 빛나는 동시에, 지구와는 다른 푸른빛을 가진 이 행성은 언제나 불명의 영역이었다.

     그들은 천왕성을 비롯한 다른 행성과 다른 항성, 다른 위성 따위를 찾아내며 우주선을 꾸렸다. 로봇을 만들고 하늘에 띄워 보냈다. 가장 먼 곳. 혹은 가장 먼 곳 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라도 도달하라고. 보이저 2호는 인류의 염원을 충실하게 이루어주었다. 그저 렌즈에 맺힌 상에 불과하던 행성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거꾸로 매달린 행성이라는 점, 여러 자그마한 위성을 달고 다니는 행성이라는 점, 태양을 마주하는 면보다 그 가운데 적도 부근을 가장 뜨겁게 유지하고 있다는 점, 그런 시답잖고도 위대한 사실들. 인류는 자연히 그 이상을 원했다. 미국 항공 우주국은 천왕성의 거대한 얼음을 발견해내고 말겠다며 2023년 UPO 프로젝트를 구상 및 발표하였으나 이후 갑작스럽게 쏟아진 정치적 논쟁과 기술적 결함, 기타 예산의 문제로 결국에는 실패했다. 그렇게 천왕성을 향한 꿈도 차츰 어딘가로 사라지던 어느 날.

     마침내 최고점을 찍은 항공 기술과 기계공학, 로봇 공학 기술을 이용하여, 지금껏 오직 하나의 고철만이 들어갔던 그 행성에, 유독 별난 고철덩이인 주은성과 이내준이 투입된 것이었다.

     보이저 2호는 700kg을 넘는 무게의 부품들을 주렁주렁 달고 천왕성으로 향했으나 주은성은 끽해야 100kg 조금 안 되는 고철을 품에 안고 그대로 쏘아 보내졌다. 인간의 모습과 유사했지만,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더 안전하고, 더 정밀하게 탐사할 수 있었다. 메모리 칩에 탑재된 정보와 기체에 기본적으로 설치된 계산 프로그램은 자동으로 천왕성의 구조를 연구하고 고찰하고 탐색할 수 있게 한다. 주은성과 이내준은 착실하게 임무에 임했다. 특히 최신형 안드로이드와는 달리 구형 안드로이드였던 이내준으로서는 주은성과 떠들 시간 따위는 없이 일했다. 사진을 찍었고, 분석했고, 송신했고, 계산했다. 모든 과정이 주은성에 비해서는 턱없이 더뎠다.

     “임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러니 이런 질문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 역시도 느렸다. 천왕성에 도달한 지 몇 개월 만에 이내준에게 주은성이 던진 질문이었다.

     지금까지 일언반구 없이 임무를 한 것은 아니었으나 어디까지나 비즈니스적이고 연구 범위 이내에서만 대화를 나누었지, 감상이나 주절주절 늘어놓는 대화는 없다시피 했다. 이따금, 주은성이 인간 사회와 지구에 대해 긴긴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도 있었지만… 어쩐지 이내준은 그것에 동조가 되지 않았다. 낡고 오래된 안드로이드라서?

     고작 그뿐?

     각설. 결국 그런 질문이 처음이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이내준은 느리게 눈을 깜빡거리며 바보처럼 자신을 가리켰다.

     “…저요?”

     동시에 주은성의 눈이 묘하게 식었다.

     “……거기 내준 씨 말고 또 누가 있는데요?”

     “아, 예. 임무는….”

     이내준은 영 돌아가지 않는 계산 시스템 아래로 더듬더듬 말을 꺼냈다. 임무에 대한 ‘감상’ 아닌 임무 자체에 대한 ‘설명’에 가까운 말이었다만. 애당초 인간과 감정에 미숙한 구형 안드로이드가 그러한 것을 처음부터 빠릿빠릿하게 구별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경직된 주은성의 낯에서는 어쩐지 미묘한 답답함과 냉함이 느껴졌고, 이내준은 그게 조금은, 거슬렸다.

     “…은성 씨는 어떻게 생각하시는데요?”

     잽싸게 반문한 것은 그런 반항심에서였을지도 모른다.

     “…저야 영광이라고 생각하죠. 제 작은 행동으로 인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건 크나큰 영예예요.”

     하나 주은성은 이내준처럼 더딘 계산 시스템을 가진 것도, 낡아빠진 부품을 가진 것도, 닳은 신체를 가진 것도 아니었으므로 술술 대답을 읊어댔다.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정석적인 대답에 뾰족하게 솟아오른 건, 이전과 같은 반항심 아닌 어떠한 이질감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이내준은 주은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보내진 안드로이드니까. 인류고 뭐고 이내준에겐 주은성이 제일 중요해서. 그렇게 프로그래밍이 된 운명이라서.

     “하지만 인류의 희망이 당신 뿐이기도 한걸요.”

     인간도 아닌 고철의 무언가에게 그런 소리를 했다.

     “의지는 높이 사지만 정말로 막 굴리다 보면 큰일이 날걸요…”

     투덜대는 어조로 중얼거리자 주은성이 묘하게 가시눈을 했다. 그런 건 저 알아서 할 수 있는데요. 똑같이 퉁명스러운 음성이었으나 어쩐지 양쪽 전부 서로에 대한 극렬한 적대감 따위는 부재한 채였다. 그리고 두 사람의 대화는 그로 물꼬를 텄다. 이내준은 주은성으로부터 인간을 닮은 안드로이드와 인간의 삶에 대해 학습했다. 안드로이드답지 않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게 인간들이 논하는 협업, 정서적 교류, 혹은 그에 유사한 어떤 기계적 상호작용에 도달했고.

     두 사람은 새 시대를 펼쳤다.

     보이저 2호가 알려주던 것보다 더 상세하고 확실한 증거들을 그들은 8.4GHz 주파수에 실어 보냈다. 천왕성의 미란다 속 유도 자기장이 발견된 것은 물이 위성 내부에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과 일맥상통한 것이라는 어느 과학자의 말을 증명하기 위하여 미란다 속에 있는 물을 찾아내 주었고, 천왕성의 바다는 액체 다이아몬드 위로 고체 다이아몬드 덩어리들이 떠다니는 형태일 것이라고 주장한 여느 박사의 말을 사진과 광물 분석 자료를 통해 증명해냈다. 보이저 2호가 찍어내지 못한 점액질의 형태를 한 바다를 찍어내어 보냈고, 천왕성 속에서 일어나는 천둥, 안개 따위를 찍어 보냈고, 인간이라면 결코 무사히 살아남지 못했을 시속 900km의 폭풍을 먼 곳에서부터 찍어 보냈다. 지구로 그러한 것들이 송신되는 족족 주은성의 이름은 드높아졌다. 주은성 프로젝트. 인류의 중앙에 우뚝 선 타이틀이었다. 이내준은 달리 그러한 것에 불만을 가진 적 없었다. 그것이 제게 할당된 임무였으니까. 되레 기꺼웠다. 이내준은 딱딱하기만 하던 제 사고회로가 어딘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었다. 그저 지나치면 됐을 행동들에 연료 낭비니 기기 결함이니 뭐니 하는 핑계를 대며 집요하게 따라붙고, 주은성에게 시답잖은 농담을 던지고, 사명과 인류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17시간의 짧은 하루를 즐기고, 그렇게, 그렇게, 스스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정말 이상하네….”

     이내준만, 느껴야 했을 텐데 말이다.

     “왜 자꾸 다운되지? 주은성 씨 진짜 몸 다 괜찮은 거 맞아요?”

     “몇 번이나 검사했잖아요, 이미…. 아니. 너무 집요하게 만지지는 마세요. 뭔가 더 뜨거워지는 기분이에요….”

     “예?”

     이내준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한 채로 인류의 모든 것을 안고 천왕성에 파견된 최신형 초고급 안드로이드를 바라본다. 자신의 집요한 따라붙음―간결히 말해, 잔소리를 떨쳐내고 제멋대로 행동해서 기어코 소행성에 충돌하지 않나, 거기서 어떤 에러 코드에 걸려서는 며칠에 한 번씩 다운을 일으키지를 않나, 그걸 치료하려고 손을 대면 더 과열되면서 되레 상태가 악화하기만 했다. 그러나 주은성의 기체 내 결함은 전혀 포착되지 않았다. 미칠 노릇이었다. 이로써 이런 짓도 3개월이다.

주은성이 겸연쩍은 듯 머리를 긁었다. 그러다가도 이내준을 의식하며 거리를 두려고 했다. 이내준은 그러한 것들이 몹시 의문이었다. 맞다. 위성의 궤도에 편승하여 천왕성 둘레를 부유하는 두 사람은 지나치리만치 가까이 엉켜 있었다. 하나 그것이 무슨 문제란 말인가. 애당초 이렇게 달라붙어 마크하라고 자신이 이 먼먼 행성에 파견되었던 것인데.

     이내준의 더딘 계산 시스템이 또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3개월째 이 기묘한 현상에 여러 변수와 수식을 대입하고 연구진 측이 제게 내재시켜준 빅데이터를 이용하여 규명하려 했지만, 그 형체는 도저히 드러나지를 않았다.

     “와.”

     그리고 형체의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주은성은,

     “오로라다.”

     언제나 딴소리였다.

     넋을 잃은 듯한 감탄사에 이내준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행성의 푸르른 표면 한 곳에 흰 자국 같은 것이 남아있었다. 확실히 보기 드문 장면이긴 했다. 이내준은 주은성이 꼼꼼하게 그 장면을 녹화하길 바랄 뿐이었다. 애당초 눈길 가는 곳이 전부 녹화 대상이니 공을 들이지 않아도 되겠지만, 그래도, 어쨌든…. 어떻게든 주은성에게 참견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하면 웃길까?

     “내준 씨. 생각은 그만하고 좀 봐요.”

     주은성의 멍한 목소리가 귓전에 파고들었다.

     “천왕성의 오로라는 고작해야 2분 유지되는 거 알잖아요.”

     “아… 그렇죠.”

     오색찬란한 형태로 오래도록 머무르는 오로라는 지구에서만 해당하는 일이다. 천왕성의 오로라는 늘 재빨랐다. 이내준은 저도 모르게 잽싸게 천왕성의 표면으로 눈길을 돌렸다. 주은성이 재미있다는 듯 장난스러운 웃음을 터트렸다. 신기한 게, 그런 말문이 통신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여긴 거의 모든 게 빨라요.”

     “아, 그렇죠. 자전도 빠른 편이니까….”

     “이번엔 안 늦네요?”

     “주은성 씨 진짜.”

     “농담이에요.”

     그런 말과 함께 느슨히 미소 짓는 주은성의 CPU는 어째선지 또 과열 중이었다. 에러 코드의 말썽이 분명했다. 대체 뭐가 문제야? 이내준은 속이 답답해졌다.

     “그런데 태양이랑 멀어서 그런가, 공전은 엄청 느리더라고요?”

     “그것도 알아요. 84년이잖아요.”

     “맞아요. 지구보다 조금 더 빠른 하루지만, 지구보다 훨씬 느린 1년을 가진 거죠.”

     지구에서의 20년은 천왕성에서의 1년조차 되지 못한다. 이 엄청난 차이에 경이를 느끼는 인간들도 있다고, 주은성에게 들었다. 이내준에게는 그저 숫자의 나열일 뿐이었지만.

     그에겐 더 중요한 게 있었다. 주은성의 부품들은 지금도 최고 온도를 향해 과열 중이었으니까. 당장 다운되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고로 이내준은 최대한 성의껏 대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제 더딘 계산 시스템을 재촉했다. 제발 에러 코드가 뭔지 갈피라도 잡아라, 잡으란 말이야….

     “전 지구보다 이곳이 제 행성 같아요.”

     주은성은… 에러 코드에 걸린 이후로 늘 삼천포에 빠졌다. 이내준은 건성으로 흘려들었다.

     “그래서 이내준 씨랑 같이 여기서 천왕성의 1년을 보내고 싶어요.”

     흘려듣지 못했다. 팽팽 돌아가던 계산 시스템에 삐끗, 오류가 생겼다. 전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이내준이 얼굴을 찌푸리며 주은성 쪽을 바라보았다. 주은성은 여전히 은근히 아리송한 낯을 하고 있었다. 무덤덤해 보이는 표정 위로 떠오른 의구심 따위를 이내준은 알아볼 수 있다.

     “…이건 뭘까요? 오류 코드의 일환일까요.”

     이내준은 계산 시스템을 재가동하며, 차라리 주은성에게서 힌트를 얻어보기로 한다. 줄줄이 실패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도해보기로 한다.

     “‘이거’라는 게 뭔데요? 주은성 씨 저를 볼 때마다 과열 증세를 일으키시는 건 맞잖아요.”

     “맞아요. 아니, 그런데. 모르겠어요. 내준 씨를 볼 때마다, 어딘가 묵직하고, 무언가에 부딪친 것만 같아요. 꼭 소행성에 충돌했을 그때처럼….”

     “더, 더! 자세히 말해보세요. 오류 해독이 가능할지 누가 알아요.”

     “그냥, 계산력이라던가, 분석력이라던가. 죄 떨어진 기분…. 모든 정보 값들의 내용이 왜곡되고 이상한 결론이 도출돼요.”

     여전히 애매했다, 재시작을 해서 그런지 도통 굴러가지 않는 기계 뇌를 붙든 채로 이내준이 되물었다.

     “어떤 방식으로요?”

     “전부 내준 씨예요.”

     이내준은 헛숨을 삼켰다. 폐 따위는 없는 기계에 불과하면서도 그랬다.

     “반짝거리는 다이아몬드의 바다를 닮은 것 하나 없는 이내준 씨에 빗대고 싶고, 청록색으로 빛나는 표면과 내준 씨의 머리카락 같은 것들을 연관시키고 싶고, 그냥 어떤 계산을 하더라도 전부 이내준 씨라고 하고 싶어요…. 오답인 걸 알면서도 관철하고자 해요.”

     어지러이 떠돌던 여러 수식들이 단숨에 정렬되었다.

     “내 앞엔 많은 게 있는데, 일단은 오로라를 같이 보고 싶어요.”

     “…….”

     “정말 에러가 나서, 망가지고 있는 걸까요? 저…….”

     무수한 데이터를 휘젓던 기계적 사고회로가 일순 전부 정지한다. 주은성의 말처럼, 그에게도 단 하나의 결론이 도출되었다. 이내준은 주은성의 눈을 마주한다. 뚫어질 듯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을 부르는 적절한 명칭은 아마도 맹목, 신뢰, 연민, 동질감, 유대, 그리고.

     그리고.

     문득 시선이 스쳤다. 주은성이 이내준을 바라보고 웃었다. 이내준은 그 낯을 보고 다시금 골몰한다. 안드로이드에게 그토록 첨예한 감정이 탑재될 수 있던가? 애당초, 감정이라는 것이 그와 저에게 허용된 영역이던가?

     “…그런데요.”

     하나 주은성이 꿍얼거리는 문장들 따위에 전부 희석되어버린다. 아, 또 에러 코드가 말썽을 부린 게 분명했다. 주은성이 딴소리를 시작했다.

     “뜬금없는 소리지만… 천왕성이요.”

     설마, 라는 말 아래, 도출된 결과에 품고 있던 의심이 그 순간 죄 확신으로 변모한다.

     “충돌해서 매달려있는 거라고 하셨잖아요.”

     임무 아닌 다른 것으로 주의를 돌리며 나를 떠올렸노라 고백했을 때.

     “뭐랄까, 그냥, 그런 것도 괜찮은 것 같아서요.”

     카메라 렌즈에 불과한 눈동자 위로 어떠한 이채가 어렸을 때,

     “내게 다가온 불가항력의 충돌에 조금 쓰러지더라도 무너지진 않고,”

     다만 조작된 소리의 조합에 불과할 목소리가 달콤하게 퍼져나갈 때.

     “부딪쳤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깨닫고 말아버리는 것이다.

     “거꾸로라도 매달려 사는 거죠. 어떻게든. 그에게 매달려서.”

     아 당신은 아마도

     “대롱대롱…….”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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